최근 에너지와 관련된 국내외 현황을 살펴보면, 탄소중립은 기존의 환경 이슈에서 경제사회 전반의 정책 아젠다로 확장되고 국가 간 교역부문에까지 크게 영향을 주고 있다. 이와 더불어 가격 급등으로 인한 에너지 공급 안정화나 에너지 안보, 재생에너지 확대로 인한 변동성에 대한 적극적인 대응 등 어려운 문제들이 차고 넘친다. 정책 난제 중 에너지 부문이야말로 오래된 문제이면서도 새로운 국면을 맞이한 난제 중의 난제라고 해도 무리는 아니다.
복잡한 문제 해결에 효과적인 방법으로 효율향상이 항상 거론되며 에너지 부문의 대표 국제기구인 IEA(국제에너지기구)에서도 효율향상을 통한 문제해결을 강조해오고 있다. 즉 탄소중립 달성을 위한 방안으로 2030년까지 재생에너지와 에너지 효율향상 중심의 온실가스 배출 감축을 추진하고 전기화, CCUS, 수소 분야의 기여도 제고를 순차적으로 이어가는 방안이다. 물론 에너지 효율이라는 용어를 들었을 때 에너지다소비기기의 효율이나 고효율기기인증, 에너지효율등급과 같은 효율관리제도를 비롯하여 한등 끄기 운동이나 대중교통이용, 냉방 설정온도 높이기, 난방 설정온도 낮추기와 같은 다양한 활동들을 머릿속에 떠올리게 된다.
기본적으로 효율은 투입된 양 대비 얻은 양을 비교함으로써 우월 여부를 비교 판단할 수 있는 대표적인 비율 지표이다. 에너지 정책에 있어서 효율향상은 에너지 가격이 급등했던 50여 년 전에 투입된 에너지 대비 더 많은 열이나 일을 얻고자 하는 공학적 해법을 찾아내고 경제성을 확보하는 것과 연동된 개념으로서 정책 장르의 하나로 자리매김하였다. <그림 1>에서 볼 수 있듯이 에너지 흐름에 있어서 수요부문의 다양한 활동들은 전기, 열, 가스의 다양한 형태의 에너지를 소비하게 되며 산업, 건물, 수송 각각의 성격에 맞춘 에너지 기기, 설비, 시스템들이 공급되어 각각의 역할을 하고 있다.
<그림 1> 에너지흐름 : 2021 에너지통계, 에너지경제연구원, 2021. 12
<그림 1>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에너지 효율향상에 대한 고민과 논의는 매우 넓고 다양한 내용들로 구성되는데 이번에는 지난 4월 마지막 주에 한국에너지학회 춘계학술발표회 특별세션으로 자리를 마련하여 논의되었던 히트펌프에 대한 내용을 소개하고자 한다. 특별세션의 제목은 ‘에너지 효율향상을 위한 히트펌프 기술 현황과 연구개발 방향‘이었다. 수열 히트펌프의 난방운전 특성 및 효율향상, Air-to-water Heat pump로의 난방시장 전환과 적용 기술, 산업공정열 공급을 위한 고온 히트펌프 시스템 개발, 공장에너지관리시스템(FEMS) 기반 산업용 히트펌프 적용 방법론, 반도체 공정에서의 초저온 히트펌프(초저온 냉동기) 효율향상 기술 개발 현황, 대용량 무급유 히트펌프 소개와 더불어 에너지 수요부문 효율향상에서 히트펌프 기술 위치와 향후 과제 등 7가지 내용에 대한 산학연 전문가의 발표와 질의응답 및 논의가 진행되었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히트펌프와 관련된 다양한 이슈, 즉 가정용에서 산업용에 이르는 적용처나 소형에서 대형, 수열원이나 난방, 급탕, 저온 공급, 공장에너지관리 등의 다양한 기능으로 특화된 히트펌프의 기술이슈들을 살펴보고 해결을 위한 노력과 향후 방향에 대해 확인할 수 있는 자리였다. 냉방시스템에서 우월한 수열원 히트펌프의 경우 동절기의 동파나 수충격, 이물질 해결을 위한 구체적인 기술개발이 필요하며 글로벌 시장의 급팽창을 맞이하고 있는 ATW(air-to-water) 히트펌프의 요소기술 개발, 고 종횡비 가공의 안정적 수행을 위한 초저온 냉열 수요와 대응 기술에 대해 살펴볼 수 있었다. 특히 공정 전주기 통합분석을 위해 “에너지밸런스 분석 → 유틸리티효율분석 → 공정원단위분석 → 설비이상진단 → 유틸리티최적화 → 공정최적화 → 시각화”로 이어지는 일련의 과정에서 에너지 절감과 에너지 최적화 구현을 위한 히트펌프 기술의 구체적인 역할도 확인할 수 있었다. 에너지 효율의 히트펌프 기술들이 매우 다양한 현장에서 역할을 넓혀가며 고도의 정밀기술개발로 진화해가고 있음을 다시 한번 확인하고 주어진 난제에 대한 기술적인 해법을 고민할 수 있는 자리였다1).
상기에 언급하였듯이 최근 세계 각국 정부의 정책적 지원에 힘입은 시장 확대로 인해 치열한 경쟁이 진행되고 있다. IEA 기술협력 프로그램(HPT)에서는 2021년 종료된 산업용 히트펌프(Annex 48) 이후에 고온히트펌프(Annex 58)를 진행하면서 제품과 실제 공정 적용의 사례 공유를 진행하고 있다. 세계 히트펌프 시장에서 주요기업인 미쓰비시, 다이킨, 캐리어, 존슨 컨트롤, 단포스를 비롯하여 한국 기업인 LG전자, 삼성전자, 센추리, 귀뚜라미범양냉방 등이 가정이나 건물 난방용, 급탕용 히트펌프 시스템을 개발하여 탈탄소나 탈가스의 방향으로 변화하고 있는 시장에 적극 대응하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와 KETEP이 2021년 12월에 발표한 2050 탄소중립에너지기술로드맵에서는 히트펌프 공급온도 광대역화를 강조하고 있는데 여기서 ‘공급온도 광대역화’는 고온 영역과 저온 영역의 확대와 이를 통한 히트펌프 적용처 확대를 의미한다. 식품, 섬유, 제지, 화학, 금속, 고무 산업의 온열 수요를 만족하기 위한 고온 히트펌프뿐만 아니라 동결건조, 반도체, 의약 산업의 냉열 수요를 만족하기 위한 냉동기나 칠러의 개념까지 포함하여 ‘열펌프’의 역할 확대를 제시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2). 에너지 수요와 온실가스배출량이 큰 산업부문의 경우 기존 화석연료기반 열원장치의 전환이나 적극적인 폐열/배열 활용을 위한 히트펌프 역할 확대가 중요하다. 각종 산업공정의 세척, 증발, 건조에 요구되는 매체의 온도는 100℃ 이상이 요구된다. 따라서 폐열/배열을 공정상에서 활용하기 위해서는 승온이 필수적이며 승온 과정을 히트펌프로 수행함으로써 화석연료사용량 감소와 저탄소화에 기여할 수 있다.
<그림 2> 히트펌프 공급온도 광대역화 기술 개요
출처 : 2050 탄소중립 에너지기술 로드맵 에너지 설비 부문, 2021.12
<그림 3> 주요 산업 공정에서 요구되는 열에너지 온도 범위
출처 : Cordin Arpagaus 등(2018)
이러한 상황에서 히트펌프를 현장에 보급하고 적용처를 넓히기 위해서는 작동 온도와 대용량시스템 구현, 고신뢰성 및 고효율 운전을 위한 다양한 기술개발이 필수적으로 요구된다. 따라서 실증까지 포함된 대형 과제 추진도 필수적이다. 히트펌프의 공급 온도를 높이기 위해서는 새로운 사이클 구성을 비롯하여 각 부품별 기술 난이도가 크게 높아지며 고효율 구현을 위한 부품복합설계와 정밀제어 구현을 위한 소재 및 첨단기술 적용이 필수적이다. 또한 York, Carrier, Danfoss가 선보인 신제품들을 보면 고효율 유도전동기 및 가변디퓨저, 영구자석 전동기, 인버터 기술들을 적용하여 최적 효율의 운전이 가능한 통합형 구성을 선보이고 있으므로 핵심적인 유체기계 기술과 전동기 기술, 전력변환기술 및 패키지 형태의 통합기술 개발이 중요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표 1> 선진 업체의 산업공정 히트펌프 기술개발 현황
증기압축식 히트펌프인 전기히트펌프의 경우 작동유체인 냉매에 대한 내용을 빼놓을 수 없다. 냉매 국제 규제 현실화는 한국도 작년 국회비준을 거쳐 지난달 산업통상자원부의 시행령 공포로 업계의 발빠른 대응을 종용하는 핵심 요소이기 때문이다. 기존에 오존층 파괴 주범으로 지목된 CFC계열 냉매의 현장 퇴출이 진행되었으나 지구온난화지수가 새로운 규제 기준으로 적용되면서 HCFC냉매와 HFC냉매들도 낮은 GWP를 지닌 HFO계열의 친환경 냉매로의 전환을 위한 기술개발이 진행되고 있으며 R-717, R-718, R-744와 같은 자연냉매나 탄화수소계열 자연냉매를 적용한 히트펌프 부품 및 시스템 개발도 진행되고 있다. Friotherm, Trane, Carrier 등의 오랜 업력을 가진 기업들은 low GWP 친환경 냉매적용 기술개발을 추진하여 상용 판매를 개시한 제품군들을 선보이고 있다. 냉열공급 시스템 부문을 보면 냉매 이슈는 더욱 어려운 과제이다. 식품이나 의약품 유통 확대로 인해 최근 높은 성장을 보였으며 시스템의 에너지 효율향상을 통한 유지비용 절감을 위한 기술개발도 중요하지만 각 온도영역별 안정적 운전과 고효율을 얻을 수 있는 냉매 문제 해결을 위한 기술개발이 필요하다. 한국의 상황을 보면 2030년까지 전폐 대상 냉매인 HCFC계열 R-22(GWP 1810)가 국내 냉동창고의 59%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어 논의와 방안 마련이 시급한 것으로 사료된다3).
증기압축식 히트펌프 못지않게 흡착식, 흡수식, 증발식 등의 열원기반 히트펌프도 배열이나 폐열과 같은 미활용열에너지 활용확대 관점에서 매우 중요하다. 향후 비중이 늘어날 분산에너지원의 효과적인 활용이나 최근에 새롭게 등장하고 있는 에너지다소비건물의 에너지효율향상을 위해서도 열원기반 히트펌프의 기술개발이 중요하다. 일례로 고밀도 데이터센터에는 기존의 공랭식 또는 수냉식에서 진일보한 액침냉각과 같은 신기술 적용이 필요하며 이때 작동유체의 온도 조건에 맞춘 히트펌프 시스템 적용을 통해 데이터센터 PUE(Power Usage Effectiveness)를 대폭 개선할 수 있다. 물론 산업부문 저탄소/전기화 과정에서 히트펌프의 역할이 늘어나기 위해서는 사업체 내 문제4)나 사업체 간 문제5)해결과 전문인력의 부족, 히트펌프 공급망 한계, 불확실한 외부요인, 제한된 실증 사례 등의 문제 해결도 필수적이다.
상기에 언급한 이슈들을 다루면서 저탄소 에너지 효율향상을 구현하고 글로벌 경쟁에 발맞추기 위해서는 다양한 이슈들이 혼합되어 있는 만큼 시계열 관점에서의 정밀한 계획 마련이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오랫동안 고민했던 공학적인 문제들에 디지털 기술과의 접목, 새로운 냉매 적용을 비롯한 추가적인 난제들이 포함되었기 때문에 종합적인 전략 마련의 중요성이 크며 산업부문, 건물부문, 수송부문 등 각 부문의 요구사항 반영과 규제 개선에 대한 고민 병행이 필요한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구조화된 전략을 지속적으로 보완하고 다양한 기술개발을 추진하며 사업화를 이끌어나갈 충분한 인력 양성이 중요하다. 전공기술과 더불어 융합관점에서의 기술까지 포괄할 수 있는 균형 잡힌 숙련도를 확보한 고급인력의 충분한 육성 없이는 히트펌프에 주어진 난제들은 제대로 풀기 어렵다. 혁신 선도국들이 국제 경쟁에서 우위를 차지하기 위해 전력을 다하고 있는 쉽지 않은 상황이지만 체계적인 전략을 중심으로 정책적 지원과 산학연 주체들의 적극적 참여를 통한 총력을 다한다면 난제 해결을 통한 지속 가능한 성장의 계기로 삼을 수 있을 것으로 사료된다.
1) 보다 자세한 내용은 “2023년도 한국에너지학회 춘계학술발표회“ 자료 참조
2) 히트펌프는 국가별로 포함범위에 차이가 있으며 ‘히트펌프’라는 용어를 난방에만 적용하며 냉동기, 칠러와 구분하는 견해를 가진 전문가들도 많음. 증기압축식사이클의 고압부를 사용하면 온열공급 중심의 기능으로 볼 수 있고 저압부를 주요 관심부문으로 적용하면 냉열공급 중심의 기능으로 볼 수 있음.
3) 기술개발과 더불어 규정과 표준화를 포함한 종합적인 논의가 필요
4) 공정 변경의 두려움과 설비투자 부담, 에너지 잠재량 평가의 어려움, 글로벌 시장 규제 인식 부족, 숙련된 실무자 부족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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